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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천사들' 대표 안기성 목사, 사회 약자 위한 잡지 '길벗' 창간
재능기부로 문화예술 기사 싣고 수익금으로 장애인·탈북민 지원
매일 봉사자들과 노숙인 찾아가 옷·간식 등 나눠주고 자립 도와

 

 

서울 종로구 이화동 주민센터 앞 한 떡집 2층 다락방. 벽엔 사진이 벽지처럼 빼곡히 붙어 있다.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서울 10여곳을 누비며 노숙인들에게 옷가지와 신발, 침낭, 초코파이 등을 나눠주는 '거리의 천사들'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다. 50여 팀으로 구성된 봉사자 2000여명은 매일 저녁 한두 팀이 이곳에 모였다가 서울 전역의 지하도로 출동한다. 이 공간은 지난달부터 낮 시간엔 잡지 편집실로 변신했다. '거리의 천사들'을 이끄는 안기성(67) 목사가 2월호로 월간 '길벗'을 창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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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성 목사는 “월간지 창간에 반대가 많았지만 독자들과 직접 만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23년째 노숙인을 돕는 안 목사는 이 사무실에서 숙식한다고 했다. 안 목사 뒤로 보이는 사진들은 봉사자들이 노숙인 지원 활동하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박상훈 기자

 

 

안 목사는 개신교계에선 '전설' 혹은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23년간 노숙인을 돌봐왔지만 한 번도 언론 인터뷰에 나온 적이 없어서다. 그는 "후원자·봉사자들이 천사입니다. 그분들이 다 해온 일인데 제가 나설 수 없고 그분들이 알려지는 걸 싫어한다"고 했다. 그는 한겨울에 노숙인을 찾아다니다 세 차례 '풍'을 맞았는데 "오히려 제가 쓰러지면 후원자·봉사자가 늘더라"며 웃었다. 안 목사가 인터뷰에 응한 것은 월간 '길벗' 구독자를 늘려 노숙인, 탈북민, 장애인을 더 잘 돕기 위해서다.

 

안 목사가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사역을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 장로교신학대 학생 시절이다. 청계천 판자촌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이 첫걸음이었다. 1983년 신학대학원 졸업 땐 동기생 2명과 "어려운 이들을 섬기자"고 의기투합했다. 고아와 빈민을 돌본 장신대 주선애(97) 명예교수가 롤모델이었다. 동료들은 안양과 대전, 안 목사는 대구 침산동 판자촌으로 깃들었다. 판자촌에서 보육원 출신으로 인근 공장에서 일하는 청소년·청년들과 '달구벌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지냈다. 청년들은 자립해 횟집 사장님도 됐다. 10년쯤 지나 이곳이 재개발되자 서울로 올라온 안 목사는 예장통합 교단 총회 상담실장을 맡아 장애인, 탈북민, 다문화 가정 등을 상담했다. 1997년 말 IMF 사태가 터졌다. 노숙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안 목사는 노숙인들이 지하도로 찾아드는 밤중에 그들을 찾아나섰다. 삶은 계란, 우유, 사탕 등 준비되는 대로 나눴다. 봉사자들이 동참하기 시작했다.

 

처음 풍을 맞은 건 1999년 2월. 낮밤을 바꿔 사는 올빼미 생활이 반복되며 건강이 상한 탓이었다. 일산으로 거처를 옮겨 요양하면서도 가만있지 않았다. 장애인들과 공동체를 만들어 수화(手話)를 배워가면서 전세금을 빼 주간보호센터를 만들었다. 2010년엔 북한의 장애인에게 휠체어, 흰 지팡이, 의수족 등을 보내기 위해 사단법인 '길동무'를 설립했다. 인터뷰 도중 그는 여러 차례 "돌아보면 '미친 짓'이나 다름 없었다"고 했다. '거리의 천사들'이 만나는 노숙인은 500여명. 이틀에 한 번꼴로 찾아가 간식을 전하고, 필요한 것을 파악한다. IMF 초기엔 자립하는 노숙자가 많았는데, 요즘은 평균 12년씩 '장기 노숙인'이 늘어났다. 23년 '미친 짓'은 보람 때문에 가능했다. 집 나간 동생을 찾으러 왔다가 봉사하는 이, 노숙자에서 봉사자로 변신한 사람, 사나흘씩 함께 여행하며 설득한 결과 노숙을 정리하고 자립한 사람들을 보면서 또 밤거리로 나선다.

 

월간지 창간은 또 다른 '미친 짓'이다. 창간호에는 박명림 연세대 교수, 미술평론가 이주헌씨 등이 재능 기부로 글을 싣는 등 문화예술 기사가 즐비한 가운데 어려운 이웃과 이들을 돕는 이들의 사연도 소개하고 있다. 잡지 판매 수익금은 계절별로 장애인(봄) 탈북민(여름) 다문화 이주민(가을) 노숙인(겨울)을 중점 지원할 계획이다. 창간사에서 안 목사는 "지식이나 정보 전달이 아닌 보람 있고 행복한 마음을 전달하는 잡지"를 지향한다며 "이제부터 '홀로 아리랑'을 '길벗 아리랑'으로 바꿔 불러보면 어떨까요"라고 적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14/20200214001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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